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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00년대 초까지 개성에서 약 20㎞ 떨어진 풍덕군 부소산 기슭에 있는 절터에는 특이한 탑 한 기가 서있었습니다. 아(亞)자형 3단 기단을 빼면 10층이어서 경천사 10층 석탑이란 이름이 붙었고, 높이가 13m나 되는 대형탑이었습니다. 옥개석 밑에 새겨진 명문(발원문) 등에 이 탑의 조성자는 1348년(충목왕 4년) 원나라에 빌붙어 권세를 누린 강융(?~1349)과 고용보(?~1362) 그리고 원나라 승상 탈탈(1314~1355) 등입니다. 이들은 고려왕실이 아니라 순전히 원나라 황제(혜종·재위 1330~1370)와 황후(당시 고려 출신인 기씨), 황태자 등의 만수무강을 빌기위해 이 탑을 조성했습니다.파워볼

오른쪽 사진은 1902년 무렵의 경천사탑 10층석탑. 왼쪽 사진은 겅천사탑 강탈사건을 특종보도한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7일자. 황태자(순종)의 가례에 특사로 파견된 일본의 궁내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가 일본 무뢰배를 동원해서 통째로 뜯어갔다.
오른쪽 사진은 1902년 무렵의 경천사탑 10층석탑. 왼쪽 사진은 겅천사탑 강탈사건을 특종보도한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7일자. 황태자(순종)의 가례에 특사로 파견된 일본의 궁내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가 일본 무뢰배를 동원해서 통째로 뜯어갔다.


■일본 장관이 강탈해간 경천사탑

그런 탓일까요. 탑의 조성에 원나라 기술자들을 대거 동원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보기드문 대리석재를 사용했고, 원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라마교 형식으로 쌓았습니다. 탑에는 동물과 꽃, 현장법사와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의 내용, 나한상이 조각돼있고, 각종 불회도와 여래상, 호법신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1907년 정말 기가 막힌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황태자(순종·재위 1907~1910)의 혼례식에 사절단으로 참석한 일본 정부의 궁내부 장관(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1843~1939)이 골동품상을 통해 일본 무뢰배들을 동원해서 경천사 10층 석탑을 무단해체해서 일본으로 반출한 것입니다.

경천사탑을 강탈해간 일본의 궁내부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
경천사탑을 강탈해간 일본의 궁내부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


다나카라는 작자는 대한제국의 고종(재위 1863~1907)이 ‘조선과 일본의 우의친선을 위해 기증하겠다’고 허락했다고 강변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일본 신문조차 “친교 우위 차원에서 위해 탑을 주었다면 정부 차원의 기증식도 열고, 기증문서도 주고 받았을 것인데 그런 절차가 없지 않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새빨간 거짓이었죠. 하룻밤 사이에 탑을 140조각으로 뜯어 달구지 10여 대에 실어 날랐다는 거 아닙니까. 주민들은 물론이고, 풍덕군수 등도 나와 말렸지만 일본인들의 서슬퍼런 총칼 위협에 발만 동동 굴렸답니다. 눈뜨고 코 베어간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집중보도하며 “다나카가 고종의 허락을 얻었다는 것은 꾸며낸 말”이라고 폭로한 1907년 4월13일 <대한매일신보>. 오른쪽 사진은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으로 일제의 침략야욕을 집요하게 보도한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집중보도하며 “다나카가 고종의 허락을 얻었다는 것은 꾸며낸 말”이라고 폭로한 1907년 4월13일 <대한매일신보>. 오른쪽 사진은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으로 일제의 침략야욕을 집요하게 보도한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140조각으로 해체해 달구지 10대로’

경천사탑 약탈 사건은 바람 앞 등불 같은 대한제국의 운명을 상징해주는 사건이었죠. 눈 앞에서 멀쩡히 서있는 탑을 빼앗기고도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분연히 일어선 외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들이 바로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한국명 배설·1872~1909)과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지 한 달 여 만인 3월7일 베델이 발행인을 맡은 <대한매일신보>가 이 천인공노할 뉴스를 특종 보도합니다. 베델은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뉴스>의 발행인도 겸했습니다. 1면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본의 특사 다나카 자작(궁내대신)의 흉계로 무기를 가진 일본인들이 경천사탑을 급습하여 탑을 해체한 뒤 실어갔다고 한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6월4일과 5일자. 4일자에서는 일본의 <이륙신문>을 인용, “이 약탈사건이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만약 다나카 대신이 탑을 가져온 절차에 잘못이 있다면 다나카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5일자는 “석탑을 빨리 되돌려보내 잘못을 사죄하라…일본으로선 역사의 무한한 수치가 될 것이니 일본 당국자는 반성하라”고 보도했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6월4일과 5일자. 4일자에서는 일본의 <이륙신문>을 인용, “이 약탈사건이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만약 다나카 대신이 탑을 가져온 절차에 잘못이 있다면 다나카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5일자는 “석탑을 빨리 되돌려보내 잘못을 사죄하라…일본으로선 역사의 무한한 수치가 될 것이니 일본 당국자는 반성하라”고 보도했다.


베델은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1904년) 영국의 <데일리 크로니클> 통신원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우국지사인 양기탁(총무·1871~1938)·박은식(주필·1859~1925) 등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습니다(1904년). 일제 침략에 맞서 위기일로의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신문 창간 및 발행에 문자 그대로 벽안의 외국인이 앞장 선 것입니다. 항일운동의 선봉에 서있던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당시 무려 1만3000부를 발행했는데, 이것은 당시 모든 신문 총발행 부수보다 많았답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언론이었던 거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두 주역인 베델과 양기탁(사진 오른쪽). <데일리미러> 1908년 8월8일자에 실렸다.|배설(베델)선생 기념 사업회 제공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두 주역인 베델과 양기탁(사진 오른쪽). <데일리미러> 1908년 8월8일자에 실렸다.|배설(베델)선생 기념 사업회 제공


<대한매일신보>는 정말 집요했습니다. 6월까지 3개월 동안 경천사탑 약탈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첫 기사인 3월7일자는 “주민 20여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 탑재석을 실어나르는 현장을 막아섰지만 일본인 40~50명이 총검을 들고 시위하며 달구지를 좌우에서 호송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을 만만하게 본 다나카의 만행과 모욕에 능히 항거할 것”이라고 분개했습니다.

추적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고종 황제의 허락을 얻었다는 것은 꾸며낸 말이다. 황제가 600년 된 탑을 가져가라고 허락했을 리 없다.”(4월13일) “석탑을 빨리 되돌려보내 잘못을 사죄하라…일본으로선 역사의 무한한 수치가 될 것이니 일본 당국자는 반성하라”(6월5일)는 등 끈질기에 파고 들었습니다.

필봉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괴롭혔던 영국인 베델은 일제의 탄압 때문에 옥고를 치렀다. 그 후유증으로 만 37살의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1909년 5월5일 수많은 인파가 양화진 묘소까지 따라갔다(오른쪽 사진). 베델의 관에는 태극기를 덮었다(왼쪽 사진). |배설(베델) 선생기념사업회 제공
필봉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괴롭혔던 영국인 베델은 일제의 탄압 때문에 옥고를 치렀다. 그 후유증으로 만 37살의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1909년 5월5일 수많은 인파가 양화진 묘소까지 따라갔다(오른쪽 사진). 베델의 관에는 태극기를 덮었다(왼쪽 사진). |배설(베델) 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일본신문도 비판 논조로 돌아서

영향력있는 언론이 앞장서자 일본 신문들조차 흔들렸습니다. 일제통감부가 발행하는 영자지 <서울프레스>조차 <대한매일신보>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다나카를 비판하는 일도 벌어졌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서울프레스>가 경쟁지인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받아쓴 것은 처음이며. 경천사탑 약탈과 관련해서 <서울프레스>의 논조는 자못 솔직했다”고 소개했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6월4일자에서 일본의 ‘이륙신문’을 인용했는데, <이륙신문>은 “이 약탈사건이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만약 다나카 대신이 탑을 가져온 절차에 잘못이 있다면 다나카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답니다.

<이륙신문>은 심지어 “절차가 잘못됐다면 다나카가 책임을 지어 양국 황실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1907년 6월9일자. 경천사10층석탑의 강탈사실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이 임진왜란 때부터 원각사 10층 석탑과 이 경천사 10층 석탑을 뜯어가려고 획책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임진왜란 때 두 탑에 눈독을 들인 자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였다. 400년 뒤 다나카는 서울 한복판에 있던 원각사 탑은 차마 가져가지 못하고 경천사탑만 강탈했다.(출처:정진석의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영국 언론인 배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역사공간, 2013에서)
<워싱턴포스트> 1907년 6월9일자. 경천사10층석탑의 강탈사실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이 임진왜란 때부터 원각사 10층 석탑과 이 경천사 10층 석탑을 뜯어가려고 획책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임진왜란 때 두 탑에 눈독을 들인 자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였다. 400년 뒤 다나카는 서울 한복판에 있던 원각사 탑은 차마 가져가지 못하고 경천사탑만 강탈했다.(출처:정진석의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영국 언론인 배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역사공간, 2013에서)


■“난 죽어도 신문은 살아남아 한국동포를 구하라”

물론 <대한매일신보>를 베델 혼자 만든 것은 아닙니다. 양기탁·박은식·신채호(1880~1936) 선생 등 내로라하는 우국지사들이 힘을 합해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인인 베델이 앞장서서 방패막이를 자처하지 않았다면 경천사탑 약탈사건은 일제의 방해와 협박 때문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흐지부지 되었을 것입니다.

초대 한국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가 그랬다죠.

“이 이토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이 한국인을 감통(느낌이나 생각이 통함)시키는 힘이 큰데, 그중 일개 외국인의 <대한매일신보>는 일본 시책을 반대하고 한국인을 선동함이 계속되니 통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랬으니 통감부는 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했고, 결국 베델은 치안방해선동죄를 뒤집어쓰고 옥고를 치릅니다. 그러면서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졌고, 급기야 1909년 5월 만 37살의 나이로 타계하고 맙니다.

베델의 유언은 “내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영토록 살아남아 동포들을 구하라”는 것이었답니다.

일본의 <이륙신문>을 전재한 <대한매일신보>(오른쪽 사진). 미국을 방문중인 구로키 대장(왼쪽 사진)이 경천사탑 약탈사건의 전모를 묻는 미국기자들의 취재요청을 모두 거절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일본의 <이륙신문>을 전재한 <대한매일신보>(오른쪽 사진). 미국을 방문중인 구로키 대장(왼쪽 사진)이 경천사탑 약탈사건의 전모를 묻는 미국기자들의 취재요청을 모두 거절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강탈사건을 현장취재한 외국인

이 강탈사건을 해외에 널리 알려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시킨 외국인이 한 분 더 계십니다.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였습니다. 헐버트는 1886년 왕립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초빙된 이후 일제 침략에 맞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 바친 인물입니다. 특히 130년 전인 1890년 무렵부터 한글의 우수성과 한국문화의 독창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분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헐버트라는 분이 경천사탑 강탈사건의 고발에 발벗고 나섰답니다. 서울에서 이 천인공노할 소식을 전해들은 헐버트는 현장으로 달려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헐버트는 자신의 취재내용을 베델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에 제보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의 특종보도는 헐버트의 제보에서 비롯된 거죠. 헐버트는 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밀사들의 활약상을 보도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공식 신문(<쿠리어 드 라 콩페랑스>). 헐버트(오른쪽 사진)는 평화클럽 연설에서 일본인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한국인 밀사들의 활약상을 보도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공식 신문(<쿠리어 드 라 콩페랑스>). 헐버트(오른쪽 사진)는 평화클럽 연설에서 일본인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해외언론에 ‘강탈사건’ 폭로

자신이 발행하는 <코리아 리뷰>는 물론이고, 일본 고베(神戶)의 <저팬 크로니클> 1907년 4월 4일자에 경천사탑 탈취 사실을 기고했습니다. 일부 일본신문이 “불법 약탈했다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이라는 반박기사를 내자 헐버트는 현장 사진과 상황을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입을 막았습니다.파워볼엔트리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까지도 무척 곤혹스러워 했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다나카의 석탑탈취사건을 결국 뭉개고 말았습니다. 헐버트는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로 합니다.

뉴욕포스트 등에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기고하여 미국내 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실제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일본 육군대장인 구로키 다메모토(黑木爲楨·1844~1923)에게 미국 기사들이 몰려들었고 곤란해진 구로키가 논평을 거부했다는 기사가 다름아닌 일본신문(<이륙신문>)에 실렸습니다.

헐버트는 이 문제를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까지 끌고 갔습니다. 고종의 밀사로 파견된 헐버트는 1907년 7월 헤이그 평화클럽에서 열린 연설에서 일본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바로 경천사탑 약탈사건을 거론했습니다. 당시 만국평화회의를 보도한 공식 신문(<쿠리에 드 라 콩페랑스>)에 “경천사 10층석탑 사건은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파괴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헐버트는 일본 고베에서 발행되는 ‘저팬 크로니클’ 1907년 4월4일자에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폭로하는 사실을 기고했다.|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헐버트는 일본 고베에서 발행되는 ‘저팬 크로니클’ 1907년 4월4일자에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폭로하는 사실을 기고했다.|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포장도 뜯지않은채 반환된 탑

이 탑은 어찌되었을까요. 결국 11년 뒤인 1918년 11월15일 약탈한 상태 그대로, 포장도 뜯지 않은채 반환되었답니다. 국내외의 거센 비판여론에 힘입은 마지막 통감 및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1852~1919)와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1850~1924)가 끝까지 버티던 다나카를 궁지에 몰아넣어 결국 반환하도록 했답니다. 당시엔 조선이 영영 일본의 식민지로 남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2005년 재복원 직전의 탑 부재. 경천사탑은 강탈 11년 만인 1918년 되돌아왔다. 그러나 140개로 산산조각난 탑부재는 극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왼쪽 사진). 탑은 두차례 복원 끝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2005년 재복원 직전의 탑 부재. 경천사탑은 강탈 11년 만인 1918년 되돌아왔다. 그러나 140개로 산산조각난 탑부재는 극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왼쪽 사진). 탑은 두차례 복원 끝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러니 조선총독으로서는 ‘조선문화재’가 자기가 다스리는 ‘조선땅’에 있는게 좋았겠죠.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서도 조선에 시혜를 베풀 필요가 있었고요. 그래서 비등한 국내외 여론을 등에 업고 반환을 추진한거죠.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도착한 탑재의 포장을 뜯어본 사람들은 그 참담한 몰골에 고개를 돌려야 했답니다. 해체된 탑부재는 당대의 기술로는 복원조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가 심했답니다.

경천사 10층석탑의 기단부 부분. 현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등장하는 <서유기>의 내용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천사 10층석탑의 기단부 부분. 현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등장하는 <서유기>의 내용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40년동안 방치한 뒤 두차례에 걸친 수리복원 끝에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국보(86호)의 대접을 받고 서있습니다. 만약 베델과 헐버트가 약탈사건을 끈질기게 고발하여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지 않았다면 경천사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나카 개인의 정원을 지키는 신세로 전락했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백주에 총검을 들이대고 높이 13m나 되는 으리으리한 탑을 뜯어가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그 시절이 너무도 가슴 아픕니다.

경향신문 선임 기자 lkh@kyunghyang.com

25~39세 청년층 고용통계 분석
정규직 희망 사라지자..’호랑이 입 속’ 자영업으로 돌진

2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상가에 영업을 중지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2020.10.21/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2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상가에 영업을 중지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2020.10.21/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세종=뉴스1) 서영빈 기자 = 번듯한 서울 4년제 대학교 인문학부를 얼마 전 졸업한 김모씨(30)는 잘 알던 학교 선배와 같이 조그만 스낵바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학교와 정부에서 제공하는 취업 체험 프로그램에 이름을 걸어두고 용돈을 벌었다”며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 코로나19가 터져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배와 빚을 내 작은 음식점이라도 열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때문에 음식점들이 힘들다고는 하는데, 요즘 배달이 잘 된다 하니 활로는 있을 것 같다”며 “무엇보다 달리 할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최근 청년 취업자가 역대급으로 크게 감소했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그런데 갈 곳 없어진 청년들이 생계형 자영업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정황이 나타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실제로 40~50 자영업자들은 연일 감소세다. 궁지에 몰린 청년들이 호랑이 입 속으로 내달리고 있는 셈이다.

◇25~39세 상용직 18만명↓ vs 자영업자 3만3000명↑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25~39세) 취업자는 771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33만2000명 감소했다. 이는 2009년 이후 11년만에 가장 가파른 감소세였다.

청년층 통계를 좀더 자세히 보면 상용직에서 가장 감소가 컸던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를 15일 자체분석한 결과 청년층 상용직은 전년에 비해 17만7000명 감소해 임시직(19만4000명 감소) 다음으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5만2000명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인 작년의 증가폭(4만4000명)보다도 많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를 다 합해도 올해 3만3000명 증가해 작년 1만9000명보다 증가폭이 컸다. 코로나19가 닥쳐 자영업 상황이 힘든 게 뻔한데, 취업길이 막히자 작년보다 생계형 창업으로 돌리는 청년이 더 늘어난 셈이다.

이와 반대로 물러설 곳이 없는 ‘진짜 생계형 자영업자’들인 40~50대에서는 오히려 줄폐업의 징후가 나타났다. 10월 40대 자영업자들은 전년에 비해 7만8000명(-5.9%), 50대는 11만8000명(-7.0%) 급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층 상용직과 일용직이 다 줄면서 그 중 아주 일부가 자영업 창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영업이 더 힘들어졌지만 청년들이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으니 창업이라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의 자영업자들이 폐업하고 나가는 곳이 많아서 이전보다 새로 진입하기는 조금 더 쉬워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suhcrates@news1.kr

우울감에 극단행동 잇따라..”예방·치료 정책적 고려 필요”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장우리 기자 = 출산 후 경험하는 우울감인 산후 우울증을 제때 치료받지 못한 산모가 아이에게 해를 가하는 비극적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파워볼실시간

산후 우울증을 방치하면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손주철 부장판사)는 산후우울증을 앓다 4개월 된 아들의 코와 입을 막아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A(41)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아기를 간절히 원했던 A씨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어렵게 아이를 얻었지만, 출산 후 스트레스로 심한 망상에 시달리다 결국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A씨는 출산 후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돌아다니거나 손을 떠는 등 이상 행동을 반복했고, 병원에서 심한 우울증을 진단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자신의 보호를 받는 어린 자녀의 생명을 뺏은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고 법익 침해의 결과가 너무나 참담하다”면서도 “출산 후 받은 스트레스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던 점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신병적 증상을 앓지 않았다면 간절히 원해 어렵게 얻은 피해자를 살해하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평생 어린 자식을 죽인 죄책감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형벌보다 무거운 벌”이라고 했다.

A씨처럼 출산 후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하다가 아이나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극단적 사례는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생후 1개월 된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친모인 30대 여성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 여성도 산후 우울증과 양육 부담감 등으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올해 1월에는 경남에서 산후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산모가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투신해 숨지기도 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TV 제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TV 제공]

이처럼 정도가 심한 산후 우울증은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산모들은 드문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산후 우울증 유병률은 10∼15%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5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 관련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산모는 1.43%에 불과했다.

정부가 2016년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출산 전후 우울증 검사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 역시 보건소에서 자가검사지로 우울증 여부를 판단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비극적 사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전 예방과 치료를 위한 정책적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은 임신·출산과 관련한 지원이 출산 전 임신부와 태어난 출생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모성 건강 측면의 접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후 우울을 산모 개인 문제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는 동시에 예방·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확대돼야 한다”며 “특히 산후 우울증 진단이 치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 이용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iroowj@yna.co.kr

[대한항공·아시아나 한가족 되나]下16일 산경장 회의…아시아나 한진그룹에 매각 논의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정부가 16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 방안을 논의한다. 인수합병(M&A)이 무산된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하는 게 핵심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16일 오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해 아시아나의 경영정상화 추진방안 관련 진행상황 등을 점검한다. 회의에는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함께 참석한다.

아시아나항공 M&A가 무산된 이후 정부는 지난 9월 산경장 회의를 열고 아시아나 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해 기안기금 2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채권단 관리 아래서 정상화 작업이 순조로울지도 의문이었다.

1위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사정도 좋지 않다. 대한항공은 화물사업 호조로 3분기에도 7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채권단의 지원이 추가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채권단은 지난 4월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빌려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채권단이 아시아항공과 대한항공을 각각 지원하는 것보다 항공업 노하우를 가진 한진그룹에 아시아나를 넘겨 한꺼번에 회생을 도모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보고 두 회사가 합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금융권과 항공업계는 분석한다.

채권단은 현재 진행중인 아시아나항공의 감자가 마무리된 뒤 보유한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아시아나 최대주주가 된다. 채권단의 채권 일부를 출자전환하면 지분율은 더욱 높아진다. 채권단은 이렇게 확보한 아시아나 지분을 한진칼에 넘기고 대신 한진칼 주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할 때의 방식과 유사하다.

대한항공 지원으로 여유가 없는 한진칼은 아시아나 인수에 필요한 재무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채권단은 한진칼의 3대 주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한진그룹이 아시아나를 인수하기 위해선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한다. LCC(저비용항공사)까지 포함하면 한진그룹의 항공 점유율은 60%가 훌쩍 넘어서게 된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우려한 노동조합의 반발도 예상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6개 노조는 긴급회동을 갖고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원태 회장측과 경영권 분쟁중인 KCGI(강성부펀드) 등 3자 연합측의 반대도 걸림돌이다. 강성부 KCGI 대표는 “경영권 분쟁 중에는 3자배정 증자를 못하는 게 정설”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혈세를 투입해 살려놓은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넘기는 과정에서 헐값 매각 시비도 나올 수 있다. 한진칼 시가총액은 4조6000억원으로 채권단이 한진칼 지분 30%를 받는다면 아시아나를 한진그룹에 넘기는 값은 1조4000억원에 그친다. HDC현대사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아시아나를 2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었으나 결렬됐다.이학렬 기자
대한항공-아시아나 인수, 현대차-기아차 사례 밟을까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사옥의 모습.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사옥의 모습.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가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인수가 성사될 경우 시장점유율 60% 이상의 독과점사업자가 탄생하지만 공정위는 1999년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 사례처럼 아시아나항공을 ‘회생 불가 회사’로 보고 예외규정을 적용해 인수를 승인할 가능성이 크다.

◇‘공룡 항공사’ 탄생

[서울=뉴시스] 특수 컨테이너가 대한항공 화물기에 탑재되고 있는 모습. (사진=대한항공 제공) 2020.10.0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특수 컨테이너가 대한항공 화물기에 탑재되고 있는 모습. (사진=대한항공 제공) 2020.10.07. photo@newsis.com

15일 정부에 따르면 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이 확정되면 공정위로부터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기업결합 대상 기업 한쪽의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이 3000억원 이상이고, 다른 한쪽이 300억원 이상이면 공정위 신고 의무가 있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 때 경쟁제한성을 따진다. 예컨대 기업 간 인수합병(M&A)으로 독과점사업자가 탄생하는 경우 자산 매각, 요금 인상 제한과 같은 시정조치를 전제로 ‘조건부 승인’을 하거나, 이런 시정조치로도 경쟁제한성을 해소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불허’를 결정한다.

이런 점에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공정위 승인을 낙관하기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선 점유율은 각각 22.9%, 19.3%다. 진에어(대한항공), 에어부산·에어서울(아시아나항공) 등 양사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고려하면 대한항공은 총 62.5%를 점유하게 된다. 이른바 ‘공룡 항공사’가 탄생하는 상황인 만큼 공정위로선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정위가 강력한 시정조치와 함께 승인 결정을 내린다면 대한항공이 스스로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핵심 자산 매각, 주요 노선 포기 등을 조건으로 내걸 경우 대한항공으로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이유가 크게 줄어든다. 이번 인수 추진의 주요 배경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고, 대한항공 역시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공정위로서도 강한 시정조치를 내리기는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제2의 현대차-기아차 사례 나올까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2020.11.06.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2020.11.06. chocrystal@newsis.com


일각에선 공정위가 ‘예외규정’을 적용해 대한항공의 인수를 승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회생이 불가한 회사’와의 기업결합에 대해서는 경쟁제한성을 따지지 않는다. 회생이 어려운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보다, 기업결합 승인으로 해당 회사 자산이 시장에서 계속 활용되는 것이 경쟁 촉진 관점에서 더 낫다는 점을 고려한 제도다.

이 경우 공정위는 △재무구조 △지급불능 가능성 △기업결합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회사 설비 등이 시장에서 계속 활용되기 어려운지 여부 △해당 기업결합보다 경쟁제한성이 적은 다른 기업결합이 이뤄지기 어려운지 여부 등을 종합 고려하게 된다.

1999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심사가 대표 사례다. 당시 공정위는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 한국 시장 점유율이 승용차 55.6%, 버스 74.2%, 트럭 94.6%로 높아지고,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기대하기도 힘들어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기아차가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며, 현대차의 인수로 산업합리화, 국제경쟁력 강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공정위가 내건 조건은 ‘3년간 트럭의 국내 가격 인상률을 수출 가격 인상률 이하로 유지’밖에 없었다.

공정위가 지난 4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승인한 것도 예외조항 적용 사례다. 당시 공정위는 이스타항공이 △2013~2019년 자본잠식 상태고 △2020년 3월 말 기준 1152억원 규모 미지급 채무액을 상환하기 어렵고 △제주항공 외 인수 희망자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조건 없이 인수를 승인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대한항공 인수 추진과 관련 “아직 기업결합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관련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회생 불가 회사’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세종=유선일 기자
대한항공-아시아나 합치면 세계 10위..”항공산업 대형화 기회”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세계 10대 항공사’로 대형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항공산업이 이번 인수합병(M&A)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일각의 평가다.

◇에어프랑스처럼 세계 10대 항공사로 도약..”경쟁력 높인다”

15일 정부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과 관련해 정부 내부에서는 항공산업 발전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다.

특히 항공산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두 회사의 M&A가 성사 된다면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좋은 기회라고 본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두 항공사의 인수합병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인수합병을 전제로 얘기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진단했다.

현재 대한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167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84대다. 둘을 합하면 251대(2020년 6월말 기준)가 된다. 에어프랑스(220여대) 루프트한자(280여대) 등 세계 10위권 규모의 항공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해 대규모 기단을 보유하면 인천공항이 세계의 허브공항으로 도약할 수 있어 시너지효과가 난다. 현재 인천공항의 슬롯(시간당 최대 이착륙 횟수) 24%를 대한항공이 점유하고 있고 16%를 아시아나가 점유하고 있는데 이 둘을 합하면 인천공항의 슬롯 40%를 점유한다.

이 경우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기능이 강화된다. 인천공항과 국적항공사의 네트워크가 긴밀해 지면서 국제적인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허브 앤 스포크’란 메인 공항을 중심으로 세계 항공사들이 ‘동맹’을 맺어 노선을 공유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한항공이 대형화 돼 슬롯을 40% 이상 점유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 항공사들과의 협업이 수월해지고 노선 공유가 더 잘 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또 “정비부분을 하나로 합치는 등 비효율을 줄일 수 있고 미주 노선을 비롯해 주요 노선의 경우 비슷한 시간대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운영하던 노선의 시간대를 분산할 수 있어 소비자 편익측면에서 좋아질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인력구조조정은 우려“경쟁체제라 운임 인상 등 독과점 횡포는 없을 것”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력 감축을 할 수 있어서다.

항공기 한대당 작은 비행기의 경우 100명의 직원이 필요한데 만약 구조조정을 이유로 비행기를 40대만 줄인다고해도 4000명이 해고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도 고용문제를 우선적으로 챙겨보고 있다”며 “노선을 없애거나 기단규모를 줄일경우 통합효과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다만 ‘독과점체제’로 인한 운임인상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내항공사뿐 아니라 외국항공사와 무한경쟁하는 체제라서 국적항공사가 두개에서 하나로 줄어든다고 독과점의 횡포가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민우 기자이학렬 기자 tootsie@, 김민우 기자 minuk@, 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총수일가에 수십억 배당금 지급, 그룹 지주사 주식 보유하기도

공정거래위원회 (CG) [연합뉴스TV 제공]
공정거래위원회 (CG) [연합뉴스TV 제공]

(세종=연합뉴스) 정수연 기자 = 대기업 오너일가 지분율이 100%로 오너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기업들이 지난해 계열사 일감으로 6천6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내부거래로 매출과 기업가치를 불린 일부 오너가(家) 회사는 거액을 배당하거나 그룹 지주사나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16일 공정거래위원회의 ‘2020년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별 내부거래 현황’을 보면 총수일가 지분율이 100%면서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한 회사 41곳은 지난해 내부거래로 6천55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들의 총매출액은 3조5천42억3천만원으로 내부거래액은 전체 매출액의 18.7%를 차지했다.

현대가 3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현대머티리얼은 지난해 현대비앤지스틸 등과 거래해 98억8천만원 규모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액은 전체 매출액의 4.9%였다.

허용수 GS에너지 대표와 그의 아들들, 허 대표의 여동생이 소유한 승산은 매출액의 18.1%(51억7천만원)를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첫째 동생 허정수 회장이 지배하는 GS네오텍은 지난해 125억6천만원 규모로 내부거래를 했다.

이들 회사는 오너일가가 지분을 100% 가지고 있어 배당금도 모두 그들에게 갔다.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주면 그 일가의 자산을 불리는 결과를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승산은 2019년 한 해 동안 7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는데 이 돈은 모두 허 대표와 성년이 된 그의 아들, 아직 미성년인 자녀, 허 대표의 여동생에게 갔다. GS네오텍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데 68억원을 지출했다.

매출액의 전부를 내부거래로 올리는 회사도 있다.

한진의 청원냉장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99.6%인 태일캐터링과 내부거래했는데 매출액 대비 내부거래액 비중이 100%였다. SM의 삼라마이다스, 한국타이어의 신양관광개발, 중흥건설의 중흥종합건설, 애경의 비컨로지스틱스도 마찬가지였다.

한진의 태일통상(91.1%), 부영의 부강주택관리(96.7%), 효성의 공덕개발(93.7%), 애경의 우영운수(90.1%)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다.

일부 기업들은 그룹 주력 회사 지분도 보유하고 있어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애경그룹 동일인 장영신 회장과 그의 남편, 아들·딸이 지분 100%를 보유한 에이케이아이에스는 매출액의 69.7%(508억6천만원)를 내부거래를 통해 벌어들이는 회사다. 이 회사는 애경그룹 지주회사인 AK홀딩스의 지분 10.37%도 보유하고 있다.

OCI 고(故) 이회림 명예회장의 아들 이화영 유니드 회장 등이 지분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유니드글로벌상사는 지난해 매출액의 4.6%가 내부거래였다. 유니드글로벌상사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유니드 지분 25.1%도 보유하고 있다.

오너일가의 개인회사 혹은 이들이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한 회사에 대한 부당지원을 감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는 합리적인 내부거래일 수 있겠으나 결국 총수일가의 자산증식, 지배력 강화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 자체가 문제는 아니나 일감을 몰아줘 해당 기업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정위는 공시대상 기업집단가운데 총수일가 지분율이 상장사 20%, 비상장사 30% 이상(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내부거래 현황을 별도로 공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특정 기업집단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당 내부거래 행위에 대한 감시와 시정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표]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 가운데 총수일가 지분율이 100%인 회사 (단위 : 백만원)

※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세종=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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